“2만명 중 1%의 답장”…이일하 이사장이 말한 굿네이버스의 시작 [함께미래 리더스]
| 전 재산을 잃고도 멈추지 않았다, ‘공동체’의 이유
글로벌 아동권리 전문 NGO 굿네이버스를 창립한 이일하 이사장이 서울 영등포구 굿네이버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를 창립한 이일하 이사장(79)은 한국 NGO 역사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1991년 ‘한국이웃사랑회’로 출발한 굿네이버스는 현재 한국을 비롯한 해외 50개국에서 아동 권리 보호와 지역사회 자립을 지원하는 글로벌 NGO로 성장했다.
국내에서는 위기가정 아동을 지원하고, 해외에서는 교육·보건·식수·소득증대 등 통합적 지역개발사업을 통해 지속 가능한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 출발은 단단한 조직이나 충분한 자금이 아니었다. 한 통의 편지 형식 후원신청서, 그리고 그에 응답한 사람들의 선택이었다.
“2만 명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200명이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 1%가 저희를 살렸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그 숫자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굿네이버스는 그렇게 ‘1%의 응답’에서 시작됐다.
● “회원은 함께 만드는 사람”…굿네이버스를 움직인 구조
굿네이버스 말라위를 방문한 이일하 이사장 / 굿네이버스 제공
이일하 이사장은 1991년 대한약사회 회원 2만 명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다. 당시 기준으로도 높은 회신율이었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의미였다. 그는 처음부터 ‘후원자’ 대신 ‘회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돈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조직을 만들어가는 주체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후원자가 아니라 ‘회원’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NGO가 오래가기 위해서는 감정이 아니라 논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왜 존재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조직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굿네이버스는 그렇게 사람의 참여와 시스템을 동시에 설계한 조직으로 성장해 왔다.
● 감옥 65일과 전쟁…삶의 방향이 흔들린 시간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연세대 재학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해 수업 대신 거리로 나섰고, 결국 체포돼 65일간 수감 생활을 했다. 이후 월남전에 참전해 부상을 입으며 손가락 일부를 잃었다. 그는 이 시기를 “삶의 방향을 두고 오랫동안 씨름했던 시간”이라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미국 유학을 준비했지만, 경기도 성남의 한 복지관으로 가게 되면서 계획을 바꿨다. 그는 “그곳에서 한국 사회의 또 다른 현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유학을 접고 현장에 남았다. 이 선택은 이후 그의 삶 전체를 바꾸는 분기점이 됐다.
성남에서 그는 신용조합, 주택조합, 의료조합을 만들고 직업교육과 일자리 사업을 추진했다. 재봉틀을 들여놓고 장갑이나 스웨터를 짜서 파는 수익 사업을 진행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사회적 경제’의 초기 실험에 가까운 시도였다.
● “집 두 채 잃어”…이상과 현실의 간극
그는 사업을 확장하며 사회적 경제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조합은 무너졌고, 사업은 지속되지 못했다.
“운이 좋아 집이 두 채 있었는데 다 사라졌죠. 지금 기준으로 보면 수십 억 원을 잃은 셈입니다.”
경영과 회계에 대한 기반 없이 시작한 구조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좋은 의도만으로는 조직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했다. 사람을 돕겠다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했고, 그 마음을 지탱할 구조와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을 몸으로 겪었다.
모든 것을 잃은 이후, 그는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가족은 미국으로 떠났고, 그는 혼자 한국에 남아야 했다. 그때 고등학생이던 아들이 “어머니와 동생들은 가고 자신은 한국에 남겠다”고 말했다. 동시에 아버지가 하는 일이 가장 가치 있다고 했다.
이 이사장은 그 말을 계기로 한국에 남았고, 이후 자신이 겪은 실패를 토대로 새로운 조직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굿네이버스였다.
● 일회성 지원이 아닌 시스템…실패에서 나온 구조
굿네이버스의 사업 구조는 그의 경험에서 출발했다. 단순한 선의만으로는 조직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체감한 뒤, 그는 처음부터 ‘구조’를 중심에 두고 조직을 설계했다.
사업은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아동권리보호(CRC), 권리옹호(Advocacy), 네트워크(Network)다. 사업 대상인 아동의 권리를 최우선 원칙으로 세우고, 그 원칙을 수행하는 방법으로 시민, 기업, 정부를 대상으로 옹호 활동을 펼쳤다. 또한 자발적인 참여를 원하는 사람을 모으고 네트워크를 조직화하며 사업을 확대해 나갔다. 국내에서는 아동보호체계 구축과 위기가정 아동 지원을 중심으로 사업을 수행하고, 해외에서는 교육·보건·식수·소득증대 등 통합적 지역개발사업을 진행한다.
이 이사장은 “굿네이버스의 본질은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며, 단순 지원이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과거 실패에서 얻은 결론이기도 하다. 지속 가능한 변화는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시스템과 참여 구조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2007년 브라질(당시 국제노사정기구연합 의장국) 룰라 대통령으로부터 UN ‘새천년개발목표상(MDGs Award)’을 받고 있는 이일하 이사장 / 굿네이버스 제공
굿네이버스는 창립 초기부터 국제구호개발 단체로서 방향을 설정했고, 방글라데시와 르완다 등에서 사업을 수행하며 국제적 기반을 쌓았다. 1996년에는 한국 NGO 최초로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포괄적 협의지위를 획득했고, 이후에도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2007년에는 유엔 새천년개발목표(MDGs) 상을 수상하며 국제사회에서 성과를 인정받았다.
그는 조직 운영에서도 같은 원칙을 강조한다. “현장에서 나온 이야기만이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굿네이버스는 사업 결과를 회원에게 지속적으로 보고하고, 필요하면 현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방 원칙을 유지해 왔다. 그는 “네트워크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관계이며, 관계는 신뢰와 소통으로 유지된다”고 말했다.
● “AI 시대일수록 공동체”…그가 말한 다음 방향
이 이사장이 최근 가장 많이 고민하는 화두는 AI다. 그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더 고립될 수 있고, 그럴수록 공동체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봤다.
굿네이버스는 2019년 ‘비전 2030’을 통해 ‘함께하는 이웃, 변화하는 공동체’를 제시했다.
그는 “굿네이버스의 방향은 공동체 운동”이라며 “앞으로는 다양한 공동체를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관심과 필요를 기반으로 모였다가 결국 사회적 참여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
그는 인터뷰 말미에 젊은 세대에게도 메시지를 남겼다. 불안과 경쟁 속에서 미래를 쉽게 비관하는 흐름에 대해, 그는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회는 반드시 온다고 믿어야 합니다. 희망을 가지면 길은 결국 열립니다.”
그는 꿈을 갖는 태도 자체를 하나의 ‘신념’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특정한 종교를 넘어,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는 마음이야말로 삶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설명이다.
“꿈을 꾸세요. 이루어집니다.”
이 이사장은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2만 통의 편지와 200명의 응답.
그는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 제 목 : “2만명 중 1%의 답장”…이일하 이사장이 말한 굿네이버스의 시작 [함께미래 리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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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시 : 20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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